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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의료봉사를 다녀와서

사실 의료봉사라는 막연한 말이 나완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봉사라는 것은 학교다닐때 동아리에서 해봤던것 외에 없었던지라 베트남 봉사라는 말이 나에게는 많이 어색했다. 갑자기 정해진 의료봉사라서그런지 맘이 더욱 많이 어수선했다. 베트남으로 떠나는 새벽 이것저것 뒤숭숭한 맘에 일찍 눈이 떠졌다. 아직 어둑어둑 어둠이 깔린 병원을 뒤로한채 목사님외 열두명의 봉사자들이 베트남으로 향했다.
이미 TV로 접해본 선입견으로 인해서인지 베트남은 아주 못사는 후진국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서 본 베트남은 들은것과 좀 많이 달랐다. 호치민은 생각보다 시골같은 느낌이 들진않았다. 시원한 가을날씨였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열대지방의 후끈한 기운이 느껴졌다. 우리가 봉사하기로한곳은 다낭이라는 곳으로 호치민에서 내려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가야되는 곳이였다.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싣고 다낭에 도착하니 현지에서 사역중인 선교사님 부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과의사 부부로 현지에서 봉사를 하면서 가족을 꾸리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좀...대단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이번 여행 내내 불편함 없이 다닐수 있었던것 같았다. 다낭은 회치민과는 달리 조금 시골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에는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가 주를 이루는 었다.이곳은 주로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이용해서 이동한다고 했다. 신기한것은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와는 달리 단지 이동수단으로만 이용해서 사고가 적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오토바이중  빠르게 달리는 사람은  없었다. 선교사님이 안내해주는 깨끗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처음 접해보는 향신료 냄새가 코를 많이 자극했다. 긴 여정에 지친몸을 이끌고 숙소에 몸을 풀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봉사가 시작되는 날이였다.
광남 디엔티엔이라는 곳인데 이번에 이곳은 우리팀이 처음이라한다. 면사무소에 임시로 의료봉사 짐을 폈다. 도착하니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 우리를 구경하러 온 사람도 많다고 한다. 외국사람을 처음보는 사람들이 많은듯 했다. 진료를 받으러 온 많은 사람들 중 두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곳 사람들의 모습들은 생각보다 심했다. 대체로 비쩍마르고 이가 새까많고 울퉁불퉁하면서 피까지 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고 신발을 신지 못하고 맨발로 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의 모습은 대체로 의료진료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같았다. 오래전 발전하지 못한 한국모습이 이렇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 안타까운 맘이 많이 들었다. 점심 시간이 좀 지나서야 진료가 끝이 났다. 현지인 분들이 고마움의 표시라고 점심을 대접해주셨다. 다른 식사는 그래도 괜찮은데 아직 향신료에 익숙하지 않은지라 국은 도저히 손댈수가 없었는데 현지인분이 국이 맛있는데 왜 안드시냐고 좀 먹어보라는 말에 억지로 몇숟가락 댔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정도 식사도 하기 힘들텐데...더 맛있게 먹었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에 괜히 죄송스러운 맘이 들었다.
저녁에는 시장으로 나갔다. 베트남은 공산국가라서 모든땅이 나라소유라한다. 게다가 외국인에게 인색해서 걷는 거리마다 통행세를 내야된다고 한다. 특히 단체로 다니는 외국인에게 통행세를 물게 한다는 말에 우리는 삼삼오오 흩어져서 밤시장을 쏘다녔다. 갑자기 만난 소나기에 비를 피하다가 선교사님이 어디선가 사오신 비옷을 하나씩 챙겨입고 마치 베트남 현지인이 된듯이 거리를 쏘다녔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등을 달아놓은 가게들이 많았고 손으로 그림을 그린 그릇들이 가게 여기저기 놓여있었다.
어느 가게에가니 동해야라는 한국 드라마를 틀어놓고 보고있었는데너무 반가워서 저거 우리나라 드라마다라고 소리치고 싶었다.선교사님이 소개해주는 커피숍에서 간단히 케에 커피를 마시고 나오니 가게들이 대체로 문을 닫고 있어 아쉬웠다.
 
봉사 둘째날이였다.
이곳 역시 광남이였다. 유이화 군청병원이였다. 병원 내부는 생각한것보다 좋지 못했다. 화장실도 더러웠고 병원 곳곳에 거미줄이 쳐져있었고 시설 또한 낙후되어 있었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어제 봉사했던 곳보다는 사람들이 나아보였다. 잔뜩 치장한 듯한 사람들도 있었고 신발은 못신거나 헐벗어보이는 사람은 적어보였다. 현지에 의사분들과 대학교 영어교사라는 분이 나와서 우리일을 도와주고 통역을 해주었다. 그곳 대학교에 다닌다는 베트남 여자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밝고 활발했다. 진료를 보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어제보다 봉사가 빨리 끝났다. 진료가 끝나니 첫날과 마찬가지로 현지인분들이 너무 고맙다는 표시로 점심을 준비해주었다. 베트남 쌀국수였다. 풀에 향신료 향이 너무 강해서 여전히 적응되지 못해 선교사님이 준비해준 김치로 간을 맞춰서 먹어야 했다.
봉사를 끝으로 미손 유적지를 구경했다. 작은 앙코르 와트라고 할정도 였다는 이곳은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참파의 옛 영화를 보여주는 듯한 그  뼈대만 남겨져있었다. 현지 관리자분과 선교사님의 동시 통역으로 무리없이 그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유적지 구경을 끝내고 버스로 이동하여 숙소에 도착했다. 다낭은 휴양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 숙소는 바다를 끼고 수영장까지 구비되어있는 리조트에 가까운 곳이였다. 그곳에서 간단한 수영과 휴식을 취하면서 마치 귀빈이 된 듯한 느낌을 느끼며 다낭에서의 마지막 밤을 마쳤다.
 
아침일찍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호치민으로 이동했다.
호치민에 도착하니 이미 두시가 넘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많이 간다는 사이공 스퀘어. 일명 짜가시장에 가니 우리나라 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롱안세계로 병원에 도착하니 이미 어둑어둑 해져 있었다. 늦은 시간이였지만 병원식구들 모두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깨끗했다.
병원식구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지막날이였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베트남을 떠난다는 생각에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병원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병원이 너무 예뻤다. 꽃과 나무들로 잘 꾸며져 잘 관리해놓은 공원을 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병원을 간단히 둘러보고 대장내시경 환자가있다고 해서 임성태과장님의 대장내시경으로 그곳에서의 의료봉사가 끝났다. 정리가 되고 호찌민시내로 향했다. 벤탄 시장에 들러 쇼핑을 마무리하고 메콩강 구경을 했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붐볐다. 과일섬과 용섬을 구경했다 용섬에서 베트남 여인 세명이 우리나라 아리랑을 부르는데 신나서 따라 불렀다. 그리고 그분들이 부르는 노래가사 중 우리를 잊지말고 이곳 메콩강을 기억해 달라는 가사가 있는데 어쩐지 찡한 느낌이 들었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위한 분위기로 이곳에서는 과일과 꿀들을 판매했다. 이곳에서 먹은 음식이 베트남에서 먹은 음식중 제일 맛있었다. 아마도 관광객을 중심으로 하는 음식이라서인지 향신료가 많이 빠져있어서 그런것 같았다. 벌써 여러끼를 베트남에서 먹었는데도 향신료에 예민해진는 것은 어쩔수 없는듯 했다.
관광을끝으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과 두시간 시간차가있어서 한국에 도착하니 벌써 여섯시였다. 병원에 열시 좀넘어 도착하여 함께 6일을 지낸 팀원들과 인사후 헤어졌다.
설레임반 불안반으로 시작했던 긴 여행이 끝났는데 여전히 내맘의 일부를 베트남에 두고온듯한 기분이들었다.그리고 그곳에서 신세를 많이진 선교사분들을 평생 기억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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