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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움직여라

안녕하세요. 주말에 지나치게 두꺼운 책이라고 밀쳐 두었던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한 책을 읽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실용주의 정신과 미국 라이프
스타일의 원류이자 자기경영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그가 사생아를 낳았더군요. 그런데 그 만이 아니고 그의 아들과 손자 역시
사생아를 가졌더군요. 당시는 쉽게 용인되는 일인지 모르지만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렇게 흠집도 있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미국인
가운데서도 존경받는 인물 가운데 꼭 들어가는 분이시지요. 아마도 나이를 많이
먹지 않았더라면 조지 와싱턴보다 먼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1. 프랭클린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프랭클린의 조상은 평범한 장인
계급이었고 부지런히 일해서 돈을 벌지 않으면 먹고 살기 어려운 계층이었다.
그는 형 밑에서 도제 생활을 하다가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로 도망쳤다.
여기서 첫번째 포인트가 있다. 무엇이든지 일을 도모하자면 움직여야 한다.
머릿속에 제아무리 환상적인 아이디어가 그려진다해도 혹은 아무리 될성부른 떡잎의
자질을 차고 넘치게 타고났어도, 결국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프랭클린은 형 밑에서 죽어라 일해 보았자 희망이 없다고 판단했고 도망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것은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젊은이에게 쉽지 않은 선택
이었지만, 결국 대단히 현명한 결단이었다.

프랭클린은 필라델피아 인쇄업자로 성공했다. 그가 훗날 정치가, 과학자, 외교관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사업가로서 성공이 밑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제적인 자립이 얼마다 중요한지 일찍부터 간파했고, 그것이 자신의 역량을
펼치게 해 줄 날개가 되리라 생각했다. 그는 "2펜스 빵과 펌프로 퍼 올린 물"로 끼니를
때우며 쉬지 않고 일했다. 정해진 목표만을 향해 가는 길에 초라한 섭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기에 두 번째 포인트가 있다. 경제적인 성공의 기본은
근면과 성실인 것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바로 프랭클린을
위한 격언과 같았다.

#2. 그는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마흔 두 살의 비교적 젊은 나이에 은퇴를 결심했다.
인생 제 2라운드를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다시 첫 번째 포인트로 돌아간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사업이 한창 승승장구하는데 돌연 그만둘 생각을 할 리가 없다.
그러나 프랭클린은 바로 지금이 적기라고 결단을 내렸다. 그는 끝없이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한 군데 안주하는 것은 애당초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후부터 프랭클린은 발명가와 정치가로서의 삶에 매진하면서, 꾸준히 글을 썼다.
프랭클린 하면 젊은 시절 도덕적 완성 프로젝트다 도 유명하지만,
결국 오늘날 전 세계가 그를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은퇴 이후부터 펼쳐진 정치가로서의
정체성이다.

#3. 이렇게 프랭클린의 인생은 시기적절한 결단력이라는 씨줄과 한결같은 근면성실이라는
날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사이좋게 교차하면서 완성해 낸 아름다운 태피스트리였다.
프랭클린은 이 화려한 융단에 한 가지 액세서리를 더 달았는데, 바로 인간적인 연민과
각성이었다.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것은 먼저 스스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각 사람이 온전히 자기 행복만 책임질 수 있어도 세상은
휠씬 바람직한 방향으로 굴러갈 테니 말이다.

#4. 벤자민 프랭클린이 발견한 것 중에서 가장 흥미롭고 끊임없이 재창조된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미국 최초의 위대한 평론가이자 그는 인생과 저술 속에서 새로운
미국의 원형을 창조하고자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자신만의 얼굴을 대중에서 보여 주었으며 후세를 위해 이를 꾸준히 연마했다.
이것은 일면 이미지 문제였다. 필라델피아의 젊은 인쇄업자로 일할 때에는
부지런한 인상을 주기 위해 둘둘 만 종이 뭉치를 싣고 거리를 돌아다녔다.
나이가 들어 프랑스의 외교 사절로 활동할 때에는 검소한 현자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털모자를 쓰곤 했다. 그 사이에는 훌륭한 상인이자 인정 많은 지역 사회
구성원으로서 근검, 절약, 정직의 미덕을 몸소 실천하는, 단순하면서도 노력하는 상인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5. 만약 프랭클린이 공식적인 학교 교육을 받고 하버드 대학에 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서 터틀럿 같은 역사학자는 프랭클린에게서 "자연스러움, 직관적인
문학적 재능, 열정, 신선함, 단순함"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프랭클린은 운 좋게도 하버드 교육 대신 그 못지 않게 지평을 혀 줄 기회를 잡게
되었다. 바로 출판, 인쇄, 신문 분애에서의 훈련과 경험이었다.
-월터 아이작슨(윤미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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